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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해수부가 혈세로 만든 여객선인데 선적은 모두 '파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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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해수부)의 '연안 여객선 현대화 펀드'로 건조비 절반을 지원받은 국내 카페리 4척이 모두 '파나마' 선적으로 드러났다. 국내 항만을 오가는 연안 여객선이 해외 선적으로 등록되기는 전례가 없다. 새 선박의 취·등록세 회피 목적으로 보인다.

14일 해수부와 업계에 따르면 건조 비용으로 나랏돈 231억~285억원의 ‘선박 현대화 펀드’가 투입된 카페리 4척은 현재 제주도와 전남지역 항구 등 국내 연안을 운항하고 있다. 그러나 4척 모두 파나마 선박으로 등록돼 있다. 국제해사기구(IMO) 등록번호와 함께 ‘파나마(PANAMA)’로 적힌 국적이 선명하다.

선주는 선박 등록 때 자국에 등록하지 않고 규제가 덜한 국가를 택할 수 있어, 해외 선적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조세회피지인 파나마 등 제3국에 등록하면 세금을 줄이고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인 선원을 고용할 수 있다. 주로 해외 여러 나라를 오가는 대형 화물선이나 크루저 등 국제 상선들이 택한다.

 

그러나 국내 항만을 드나드는 연안 카페리가 이처럼 해외 선박으로 등록한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연안 여객선은 선적을 해외로 등록하더라도 외국인 선원을 채용할 수 없도록 규정돼 선박 운영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절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도 “연안 여객선 선적을 해외에 둔 경우는 처음 본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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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와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2018년 10월 17일 전남 완도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해수부가 선박 건조비용의 절반을 지원하는 '연안 여객선 현대화 펀드'로 탄생한 1호 카페리의 취항식을 갖고 있다. 해양수산부 제공

 

문제는 선박의 해외 등록을 통해 취득세와 등록세는 물론 정부의 관리 감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카페리 4척 모두 파나마 선적으로 등록했고, 이 때문에 우리 정부에 취·등록세를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박의 건조가액 50%는 정부가 지원했고, 40%는 선사가 선박을 담보로 국내 은행에서 대출 받았다. 선사는 건조가액의 10%만 부담했다. 카페리의 경우 정부는 전쟁 등 유사시 징발할 권한이 있지만, 이들 선박은 외국 선박으로 등록돼 징발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국내 여객선사의 한 대표는 “세월호 참사 후 여객선 안전 강화를 위해 세금을 투입한 배를 유사시 우리 정부가 이용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박은 정부 보조금을 다 갚으면 15년 뒤 선사 소유가 된다. 그전까지는 지분 절반을 보유한 해수부와 40%의 선박 자금을 빌려준 은행, 그리고 선사가 결합한 특수목적법인(SPC) 소유다. 해수부 관계자는 "여객선 펀드로 건조한 카페리는 민간금융도 참여해 비용을 조달했기 때문에 선박의 국내 등록까지 강제할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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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로부터 285억 원의 선박 건조비용을 지원 받아 제주와 전남 목포항을 운항 중인 국내 한 카페리가 11일 제주항여객터미널 부두에서 화물을 싣고 있다. 선박에는 '파나마(PANAMA)'라는 선적 표시가 또렷하게 적혀 있다. 제주=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제주= 김정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