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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 선박연료’ 알고도 판 글로벌 기업… HMM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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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운업계까지 피해를 입힌 싱가포르의 ‘저질 선박용 연료유’ 유통 사건과 관련, 연료유 공급 업체에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졌다. 국내에선 HMM(23,400원 ▼ 50 -0.21%)이 저질 연료로 피해를 입었다.

14일 조선해운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해양항만청은 선박 연료가 오염된 저질 제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판매한 연료유 공급 업체인 글렌코어(Glencore)에 오는 18일부터 2개월간 영업정지 조치를 내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글렌코어는 스위스 국적의 세계 최대 자원개발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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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해상에서 선박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지난해 4분기부터 세계 최대 선박 연료 공급항인 싱가포르에서 연료유를 공급받은 일부 선박들의 엔진 및 연료 공급 계통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싱가포르항에서 선박 연료(VLSFO, HFO)를 공급받은 뒤 엔진 및 연료 계통 이상을 보고한 선박은 약 80척에 이른다. 일본 해운사 MOL의 경우 32만6000DWT급 철광석 운반선이 싱가포르에서 연료 공급을 받고 브라질을 향해 출항한 뒤 인도양에서 문제가 발생해 인도 남부로 견인됐다.

HMM도 자사 소속 복수의 선박이 싱가포르항에서 오염된 연료 공급 후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HMM의 한 18만2000DWT급 벌크선은 싱가포르에서 연료를 공급받고 브라질로 향하던 중 인도양 남부에서 48시간 멈춰있고, 이후 목적지를 남아공 항구로 변경해 5일간 머무는 모습이 목격됐다.

싱가포르해양항만청 조사 결과, 문제가 된 연료유 공급 업체는 글렌코어와 페트로차이나로 압축됐다. 글렌코어는 글로벌 자원 메이저 기업이면서 싱가포르항 연료유 공급실적 6위인 회사다. 중국 국영 페트로차이나는 싱가포르항 연료유 공급실적 1위다. 이들에게 오염된 연료유를 공급받은 선박은 200척 이상이고 오염된 연료유 규모는 최소 14만톤으로 추정된다.

글렌코어와 페트로차이나가 공급한 연료유에서는 일반적인 선박 연료유에서는 보이지 않는 염소계 유기화합물이 다량 발견됐다. 업계에서는 이들 염소계 유기화합물이 연료 침전물 용매로 쓰이는 점을 들어 연료 품질을 저해하는 아스팔텐 함량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싱가포르해양항만청은 연료유 품질 문제를 발견한 즉시 공급을 중단한 페트로차이나에 대해서는 징계하지 않았다.

오염된 연료유는 UAE에서 출발해 말레이시아 해상저장시설에서 혼합정제된 뒤에 싱가포르에 도착했고, 페트로차이나는 글렌코어로부터 문제가 된 제품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부품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대중공업(134,000원 ▼ 1,500 -1.11%)그룹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싱가포르에서 연료유를 공급받고 문제가 발생한 선박을 수리한 고객사에게 기술 지원을 했다. 유사 사례가 늘어나자 현대글로벌서비스는 현대중공업 엔진을 구매하거나 사용중인 고객들에게 지난 3월말 긴급 공지를 발송해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조선해운업계에서는 예견된 사고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미국 휴스턴 오염 연료유 유통 사건 때 드러난 연료유 품질 관리 체계의 문제점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박 연료유의 품질은 원유 산지에 따라 특성이 크게 좌우되며, 생산에 쓰이는 혼합 원료유의 종류 및 정제공정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평가다. 항만별 제품 품질의 차이도 크다. 연료유를 사용하는 해운사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구조다. 싱가포르 관련 당국은 연료유 내 검사가 필요한 화학물질들의 목록과 농도 기준을 만드는 등 자국내 연료유 품질 보증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