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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달리는 자율운항… 시장 패권은 ‘표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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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일. 전남 신안군 가거도 인근 해역에서 최대 14노트(시속 1.852㎞)의 속력으로 자율운항 중이던 300t급 예인선 ‘삼성 T-8’과 목포해양대학교 9200t급 대형 실습선 ‘세계로’가 각자 운항하던 중 맞은편에서 마주쳤다. 가던 방향으로 운항한다면 부딪힐 뻔한 상황이었다. 두 선박은 1해리(1.852㎞) 밖에서 방향을 틀어 상대를 피한 후 목적지로 갔다. 그런데 선장이 배의 키를 조종한 게 아니었다. 선박에 탑재된 자율항해시스템이 스스로 방향을 바꿨다.

선원 한 명 없이도 배가 스스로 항해하는 ‘자율운항 선박’ 시대가 오고 있다. 한국의 조선 3사를 비롯해 전 세계 조선업계는 기술 확보전을 치열하게 치르고 있다. 국제적으로 ‘자율운항 선박’의 표준을 완성하지 않은 만큼, 표준화 기술을 먼저 확보하는 국가와 기업이 시장의 패권을 쥐게 된다.

자율운항 선박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센서 등의 첨단 기술을 융합해 선원 없이 스스로 최적항로를 설정하고 항해할 수 있다. 핵심은 선박 운항보조시스템, 이·접안 시 지원 시스템이다. 운항보조시스템은 ‘테슬라’의 오토파일럿(Autopilot)과 비슷한 개념이다. 카메라, 레이다 등의 다양한 센서로 장애물을 인식하고 안전한 경로를 안내한다. 이·접안지원시스템은 차량용 ‘서라운드 뷰’에 비교된다. 차량 주차 시에 서라운드 뷰 시스템으로 주차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것처럼 정박 시 주변을 한눈에 보여주고 거리를 표시해 안전한 접안과 이안이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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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 고령화, 인력 부족현상은 ‘무인선박’ 수요를 키운다. 산업계에선 화물선에 자율운항을 적용하면, 해상물류에 획기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한다. 28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어큐트마켓리포츠(Acute Market Reports)에 따르면, 자율운항 선박 및 관련 기자재 시장은 연평균 12.6% 성장해 2028년 2357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해양수산부는 자율운항 선박 도입으로 인적 과실에 따른 해양사고의 75% 감소, 대기오염물질 저감으로 연간 3400억원 환경편익 발생이라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한다.

시장이 뜨거워지자 조선업체들은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020년 12월 사내 벤처 1호로 아비커스(Avikus)를 출범했다. 아비커스는 지난해 6월 경북 포항운하 일원에서 선박 자율운항 시연회를 열었다. 한국 최초로 12인승 크루즈 선박을 완전 자율운항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1월 열린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2’에서 아비커스의 자율운항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삼성중공업은 2016년부터 독자 개발한 자율항해 시스템 ‘SAS(Samsung Autonomous Ship)’ 상용화에 전력투구 중이다. 2019년에 원격 및 자동 제어기술 등의 핵심역량을 확보하고, 길이 3.3m의 원격자율운항 무인선 ‘이지고(EasyGo)’를 제작해 해상 실증에 착수했다. 2020년 10월에는 업계 최초로 300t급 예인 선박 ‘SAMSUNG T-8’호의 자율 운항에 성공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스마트십 솔루션 ‘DS4(DSME Smart Ship Platform)를 개발하고 있다. HMM의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에 탑재해 선주가 육상에서 선박의 메인 엔진, 공조시스템 등을 원격 진단할 수 있다. 대우조선의 자율운항 시험선 ‘단비(DAN-V: DSME Autonomous Navigation-Vessel)’는 경기 시화호와 영종도 서해상에서 실증 작업을 거쳐 올 연말까지 자율운항 관련 기술을 테스트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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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는 자율운항 선박의 도입을 가를 열쇠를 ‘표준’으로 본다. 당장 자율운항 기술을 개발해도, 어떤 기술을 갖췄을 때 ‘자율운항 선박’이라 부를 수 있는지조차 국제적 정의가 없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자율운항 선박에 4단계 자율등급을 설정하고 있다. 1단계는 자동화된 프로세스 및 결정, 지원 시스템을 갖춘 선박이다. 2단계는 원격제어가 가능하며 선상에 선원이 승선하는 선박, 3단계는 원격제어 가능하며 선상에 선원이 승선하지 않는 선박이다. 4단계는 완전 자율운항이다. 다만 IMO의 자율등급을 두고 독일 일본 프랑스 중국 등에서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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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났을 때 누가 책임을 질지 등도 정리해야 한다. IMO는 자율운항선박(MASS) 도입을 위한 협약(MASS Code) 개발·적용방안, 선박의 자율등급 재검토, 원격운항자 등의 용어 정의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자율운항 시장의 패권을 잡으려면 표준을 선점해야 한다. 실증을 바탕으로 하는 데이터 확보, 표준성 선점이 관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이 개발돼 있다 한들 선사가 편히 이용하고 맡기려면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대형상선의 대양 횡단 데이터 등 선사와의 소통을 통해 데이터나 사례를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 바다를 달리는 자율운항… 시장 패권은 ‘표준’에 달렸다-국민일보 (kmib.co.kr)